삼전닉스의 급등과 광기, 그리고 2 vs 100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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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삼전닉스'의 급등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코스피 지수는 8,000포인트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국내 주식시장이 제 가치를 찾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광기와 열병이 휩쓸고 지나가는 장세인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국장이 본궤도에 올라온 것인지, 아니면 온 국민이 투기의 파도에 맞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인지는 훗날 우리의 후배들이 판단해 주겠지요. 저는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이 매우 낮습니다.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 계좌에서 '코스피 200'을 추종하는 펀드에 500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을 넣어두었을 뿐입니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 미만이지만, 수익률은 벌써 70%를 넘어섰습니다. 판단 실수로 매도했던 S&P 500 펀드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가정해도, 단기 수익률 면에서는 국내 지수가 모든 상품을 압도할 만큼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분위기에 따라 대중의 심리도 요동칩니다. 요즘은 주변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하지 않은 투자자를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입니다. 모두가 적극적인 투자자가 되고 싶어 혈안이 된 듯합니다. 특히 수익을 보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투자의 천재'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지요. 하지만 주식 시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일은 늘 반복되어 왔고, 드라마의 끝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자신을 천재라고 믿었던 이들이 가장 참혹한 결말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과거 IT 버블, 바이오, 중국 관련주, 가상자산 열풍 등 제목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늘 똑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번엔 다르다"고, "반도체가 미래다"라고 말하지만 저는 이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 지인은 하이닉스로 큰 수익을 냈고, 직장 동료 한 명은 반도체 레버리지로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할 일입니다.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저는 ...

공짜 점심은 없다: 나쁜 충고가 늘 무료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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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특성상 고액 자산가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최근에는 100억 원대의 주식 자산을 보유한 분을 뵙게 되었다. 초기 투자금은 알 수 없으나, 주식 시장에 참여한 지 7년 만에 100억 대에 도달했다고 한다. 현재 약 150억 원 규모의 자산을 직접 운용 중인 그분의 투자 스타일은 스터디 그룹과 함께 코스닥 바이오 상장사를 분석하며 시세를 추종하는 '트레이딩'으로 보였다. 특히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는 리더가 뒤에 있는 듯했다. 나 역시 그분에게 세 가지 종목을 추천받았고, 부끄럽지만 동료들과 함께 소위 '무지성 매수'를 진행했다. 큰 금액은 아니었으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수익률이 50%를 넘어서자, 나도 모르게 그분을 신봉하게 되었다. 이성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만이 투자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임을 알면서도, 눈앞의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는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만 것이다. 나 또한 그저 군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다가왔다. 상상력이 인간을 파괴하는 힘은 실로 엄청나다. 수익이 유지되는 동안 나는 그분의 추종자가 되어 '이대로 7년을 더 투자한다면 내 자산은 얼마나 불어날까' 하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평소에는 꿈꾸지 않았던 화려한 미래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멋진 차, 화려한 집, 그리고 시계처럼 신분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들로 타인의 시선을 즐기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따뜻한 해변에 앉아 수백억 자산가로서 여생을 보내는 노년의 나를 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달콤한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중동의 지정학적 갈등으로 주식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하자, 나와 동료들은 손실을 보지는 않았지만 아주 미미한 수익만을 남긴 채 시장에서 대피해야 했다. 사실 그전부터 국제 정세와 상관없이 하루에도 20~30%씩 널뛰는 그래프는 내 일상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내 삶은 늘 흥미진진한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만의 일상적인 패턴에 큰 만족을 느...

근로 소득의 감가상각을 배당으로 상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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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자 신념은 최대한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만을 적립식으로 매수하며, 모든 복잡하고 잡다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실제로 지난 7년간 나의 퇴직금은 모든 비중이 S&P500에 집중되어 있었다. 2025년, 인생의 방향을 수정했다. 남들과 똑같이 '서울에 내 집 마련'을 목표로 삼기보다, 금융 자산을 통해 노후의 경제적 자립을 완성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직접 투자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은 매월 150만 원을 SPYM(S&P500)에 투자해 왔다. 아직은 성과가 미미하지만, 복리의 힘을 믿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만족할 만한 지점에 도착하리라 확신한다. 물론 이 여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릴 것이다. 2026년 3월에는 투자처를 조금 더 분산하여 SCHD에 100만 원, SPYM에 50만 원을 배분했다. 이와 별개로 연금저축 계좌에서는 KODEX 미국나스닥100에 매월 100만 원씩 적립하고 있다. 강력한 성장성을 견인하는 상품이 이미 포트폴리오에 있음에도, 과연 SPYM까지 병행하는 것이 다방면에서 최선의 결과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언제까지 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충분한 자산 성장이 이루어지기 전에 뜻하지 않게 은퇴해야 한다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금을 갉아먹으며 생활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물론 배당에는 세금과 건강보험료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만 충당되어도, 실직 후 급하게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재취업 대신 은퇴 시점을 앞당기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근로 가치는 나이가 들수록 감가상각될 수밖에 없지만, 이와 반대로 배당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난다. 근로 능력의 상실을 배당 소득이 상쇄해 주는 ...

방향을 잃은 출근길, 방향을 잃은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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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직장으로 출근하던 날, 내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지하철을 타는 일이었다. 다행히 서울에 먼저 자리 잡은 친구가 가까운 역까지 동행해 주었지만, 친구도 출근해야 했기에 결국 혼자 길을 찾아야 했다. 엄청난 인파에 휘말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고, 떠밀리듯 사람들 틈에 끼어 당황할 뿐이었다. 친구는 "주황색 선만 따라가서 타고, 사람이 제일 많이 내리는 곳에서 그냥 따라 내려"라고 조언해 주었다. 하지만 내게는 모든 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가는 것 같아 난감하기만 했다. 지금 떠올려 봐도 그때의 기억은 아찔함과 막막함으로 가득하다. 방향성이 없기는 5년이 지난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에 주식 공부를 시작했고, 어설프게 입문서 몇 권을 사서 읽어보았다. 그러나 금융 지식이 전무했던 내게 주식 책은 마치 외국어 같았다. 자연히 공부는 등한시한 채 편한 길만 찾게 되었고, 결국 3개월에 100만 원을 내면 급등주를 추천해 준다는 유사 투자 자문 사이트에 가입했다. 화려한 과거 성과들에 마음이 혹했던 것이다. 그렇게 대책 없고 무모한 투자가 시작되었다. 당시 같이 일하던 후배는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도 끼워달라며 졸랐다. 결국 서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함께 투자를 시작했다. 종목 추천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바뀔 정도로 변화무쌍했다. 업무 중에 손절가와 익절가를 체크하며 따라가기란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크게 투자해 볼 만한 종목이 추천되었고 우리는 겁도 없이 수천만 원씩을 쏟아부었다. 종목 알림을 받자마자 급하게 매수를 마친 뒤, 허탈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었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근데, 우리가 방금 산 종목 이름이 뭐였지?" 나는 7,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고, 후배도 2,000~3,000만 원 정도를 넣었던 것 같다. 이후 1년 동안 수익률이 -50%에서 -70% 사이를 오가는 것을 지켜보며, 살아서 경험할 수 있는 ...

깨달음은 왜 항상 뒤늦게 찾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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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과 인내심은 분명 삶을 나아지게 한다. 다만, 그 열매를 맺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길 뿐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공부나 운동,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 없이 뚜렷한 목표나 열정도 부족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제 갈 길을 찾아 앞서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뒤늦게 위기감을 느꼈고, 등 떠밀리듯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준비 없이 뛰어든 세상에서 고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 얻은 전세방 창문을 열면 바로 소음 방지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벽과 건물 사이는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벽 너머에는 지하철과 KTX가 수시로 오가는 철길이 있었다. 이사 첫날부터 두 달 동안은 기차 소리가 잦아드는 새벽 3~4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도대체 소음 방지 벽을 왜 설치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동네였다. 그럴 때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자다’라는 동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잠들 수 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 달이 지나자 나에게도 소음과 진동을 이겨낼 내성이 생겼다. 가끔 놀러 온 동료들이 다음 날 아침, 이 소란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곤히 잘 수 있냐며 놀랄 정도였다. 그 무렵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앞날이 막막한 처지였지만, 결혼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재정 계획을 짜며 부족하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상대방은 경제 관념이 부족해 수중에 단돈 100만 원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저축을 먼저 하고 남은 돈으로만 생활하는 방식을 고집했고, 그녀는 순진하리만큼 잘 따라주었다. 형편은 넉넉지 않았지만, 미래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함께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그 시절, 나는 돈에 대해 가장 처절한 갈증을 느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고 바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늘 가슴을 짓눌렀다. 서울에는 부자가...

조용한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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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평생 일했는데도 부자가 되지 못할까? 부모님이 가르쳐준 인생의 진리는 열심히 노동하고 저축하는 것이었다. 28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처음 자리 잡은 숙소는 월 25만 원의 1.5평 고시원이었는데, 침대와 책상이 겹쳐서 배치된 비좁은 구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시원은 강남구청역 인근에 위치했다. 도보로 10분만 걸으면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청담동 명품 거리까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고시원 정문을 열고 나오면 곧장 청담동의 화려함이 펼쳐졌기에, 어둡고 음울한 방에 있다가 다른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 같아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유한 아파트가 큰 대로를 따라 줄지어 있었고, 1층에는 테라스 카페가 많았다. 밤이 되면 노란빛 전구가 밝게 빛나며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그곳에서 1년을 살았지만 나는 한 번도 카페에 가본 적이 없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왠지 그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당시 월급 167만 원 정도에 연 1회 상여금이 조금 지급되는 회사에 다녔는데, 고시원비와 생활비를 다 쓰고도 100만 원 가까이 저축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들뜬 마음과 젊음이 비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흑백 사진 같은 고시원을 나와 바쁜 사람들 속에 섞이면 비로소 삶에 색이 입혀지는 것 같았다. 출근길에 보이는 멋진 아파트를 보며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 저기에 살 수 있을까?’라는 헛된 꿈을 꾸며 혼자 웃기도 했다. 2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며 급여는 200만 원 초반으로 올랐고, 나는 더 열심히 저축했다. 그만큼 자신에게 가혹하게 채찍질하며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계속 손을 뻗고 있는 것 같았다. 사는 곳도 나아졌다. 대출을 조금 보태 보증금 6,000만 원의 원룸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거봐, 열심히 살면 계속 나아지잖아."라며...

지금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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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2세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잠이 들기 전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심에 가끔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나이에 이르니 보잘것없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하는 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용기를 내고 싶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퇴직금을 꼭 관리해야 한다. 최근에는 주식 시장에 대한 관심이 많이 올라가서 투자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직장인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퇴직금을 적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지만,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해서 아예 손을 놓는 분들이 많다.  현재 내 퇴직금 계정이다. 직장 생활은 13년 정도 되었다. 퇴직금을 본격적으로 운용한 기간은 7년이다. 처음에는 나도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적립하고 3% 내외의 이자 수익률로 자금을 가둬 놓았었다. 원금이 손실 되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이 있었고, 예측 할 수 없는 위기에 내 퇴직금을 노출하고 싶지도 않았다. 생각을 변화 시켜준 것은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이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이 독서에 취미가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내용이 좀 어렵다. 사실 나에게는 좀 많이 어려웠다.   현명한 투자자를 읽은 후에 투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서적과 유튜브를 통해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퇴직금을 가지고 무모하게 펀드 매매를 시도 했는데, 초심자의 행운이었는지 13,14년도에 투자한 중국, 인도, 베트남 펀드에서 꽤 의미 있는 수익률을 달성 했었다.  사실 내가 했던 펀드 매매 행위는 투자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시도를 통해서 퇴직금 운용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이후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