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왜 항상 뒤늦게 찾아오는가

성실함과 인내심은 분명 삶을 나아지게 한다. 다만, 그 열매를 맺기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길 뿐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공부나 운동,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 없이 뚜렷한 목표나 열정도 부족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제 갈 길을 찾아 앞서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뒤늦게 위기감을 느꼈고, 등 떠밀리듯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준비 없이 뛰어든 세상에서 고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 얻은 전세방 창문을 열면 바로 소음 방지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벽과 건물 사이는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벽 너머에는 지하철과 KTX가 수시로 오가는 철길이 있었다. 이사 첫날부터 두 달 동안은 기차 소리가 잦아드는 새벽 3~4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도대체 소음 방지 벽을 왜 설치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동네였다.

그럴 때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자다’라는 동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잠들 수 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두 달이 지나자 나에게도 소음과 진동을 이겨낼 내성이 생겼다. 가끔 놀러 온 동료들이 다음 날 아침, 이 소란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곤히 잘 수 있냐며 놀랄 정도였다.

그 무렵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앞날이 막막한 처지였지만, 결혼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재정 계획을 짜며 부족하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상대방은 경제 관념이 부족해 수중에 단돈 100만 원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저축을 먼저 하고 남은 돈으로만 생활하는 방식을 고집했고, 그녀는 순진하리만큼 잘 따라주었다. 형편은 넉넉지 않았지만, 미래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함께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그 시절, 나는 돈에 대해 가장 처절한 갈증을 느꼈다. '내가 조금만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않고 바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늘 가슴을 짓눌렀다. 서울에는 부자가 왜 그리 많은지, 그들의 삶과 비교하면 내 모습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저들은 나와 무엇이 다르기에 저토록 풍족한 삶을 누리는 걸까?’

열심히 살수록 인생이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파도를 거슬러 가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서 발악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막막함이 삶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답답한 마음에 재테크 서적을 뒤적였지만, 문해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책도 내게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부유한 고객들에게 무례를 무릅쓰고라도 “어떻게 부자가 되셨습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설령 물어본다 한들 그들이 방법을 알려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부자들은 세간의 인식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는 점이다. 만약 그때 용기 내어 질문했다면 그들은 기꺼이 길을 일러주었을지도 모른다.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우리가 부자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늘 그래왔듯 모호한 인생의 흐름을 반복하며, 그저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하고 악에 받친 욕심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비슷한 시기에 친구들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고, 시험에 합격하고, 결혼을 하는 등 인생의 과업들을 제때 이뤄내는 것 같아 보였다. 나만 모든 타이밍을 놓치고 뒤처진 기분이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인생은 결코 쉽게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깨달음은 언제나, 모든 폭풍이 지나간 뒤에야 뒤늦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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